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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노무현, 벼랑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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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kiwi 2009. 5. 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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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나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절망의 철학자를 떠올렸습니다. 특히 자살은 가장 치명적인 절망의 결과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 중 가장 뛰어난 승부사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절망이라는 자살의 원인진단에 앞서 그가 세상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절망했을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투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자신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심히 안타깝고 앞으로 남은 생마저 다른 사람의 짐이 될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자살은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승부수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생은 승부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승부수를 던질 때마다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새옹지마 같아서 성공한 승부수 뒤에는 실패가 따랐고 실패한 승부수 뒤에는 성공이 따랐습니다. 놀라운 일은 승부수를 던질 때마다 그는 늘 승리를 자신했지만 승부에 연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진정한 승부사는 성공과 실패에 초연합니다. 승부를 즐길 줄 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공과 실패와 상관없이 승부수 자체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노무현의 승부수는 그의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이번 자살 사건도 그의 승부수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까지 강력한 승부수를 던질 줄 아는 그는 진정한 승부사의 기질을 타고난 고수임이 확실합니다.

 그의 첫 번째 승부수는 사법고시 도전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했던 그는 그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사법고시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9년만에 마침내 17회 사법고시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짧은 판사시절을 지나 변호사로 독립한 그는 그 시절에 비로소 원하고 원했던 가난의 굴레를 벗어던졌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의 승부수는 가난을 끊어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승부수는 1988년 제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던 때에 던져졌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일약 인권변호사라는 별을 달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권유로 부산에서 출마한 그는 애초의 정해진 상대를 제쳐두고 당시 5공 실세 중의 실세였던 허삼수씨를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치러진 5공 청문회에서 5공 실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살인마라고 외치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깊이 박힌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승부수는 5공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세 번째 승부수는 김영삼과 김종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감행한 3당 합당에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김영삼 당시 통일 민주당 총재에게 정도가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정치인들과 함께 꼬마민주당에 남아 있던 그는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삼수 후보에게 참패했습니다. 김영삼 총재가 진정한 군인으로 허삼수씨를 추켜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승부수는 참담한 패배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후에도 민주당 후보로서 부산시장 선거와 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면서 그의 연이은 승부수는 경쟁의 무대에서 더 이상 성공을 가져오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이때 던져진 승부수는 3당 합당 반대와 3김 청산, 그리고 영호남 지역감정 타파였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2002년 대권도전은 실패한 승부수가 가져온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여러 차례 민자당 및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영남의 공고한 아성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이 마치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 같았지만 사람들은 점차 그의 승부수가 뜻하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불렀습니다. 노사모라는 충성도 높은 우군을 얻은 노무현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초반 지지율에서 두 배나 차이를 보이던 이인제 후보를 물리치고 마침내 대통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2002년 막바지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벌어진 야권 단일화 승부수는 그의 이제까지 던진 승부수의 백미였습니다.

사실, 그는 대선후보 시절 줄곧 후보교체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민주당 내에서도 비주류였고 청문회 스타라는 이미지 외엔 연속된 선거에서 실패한 후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월드컵을 등에 업고 등장한 정몽준 대선 후보와의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마저 수용하며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적중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네 번째 승부수였고 그는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때의 승부수로 그는 대통령이 되어 서민들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만천하에 선포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승부수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중간평가라든지 탄핵이라든지 야권 대연정이라든지 하는 승부수를 통해 기득권층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도덕성을 최고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종부세 등 부자들에게 세금폭탄을 안기는 정책을 펴 결과적으로 서민들에게 유리한 사회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북한에 대해서도 김대중 정권의 '햇볓정책'을 이어받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부자들에게 불리했던 각종 정책들은 다시 부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바뀌었고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은 완전 해체됐습니다. 그리고 박연차 태광실업회장의 돈을 받아 먹었다는 불명예를 무릅쓸 위기에 처했습니다. 또한 그를 포함한 가족들과 측근, 지인들까지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사이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검찰은 고양이 쥐를 갖고 놀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망신주기 수사로 일관했습니다. 보수 신문들은 연일 그의 사소한 말과 언행, 뜬 소문을 근거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물어 뜯었습니다. 김동길 교수는 그에게 자살하라고까지 말하며 보수층의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승부사 노무현은 마침내 마지막 승부수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0미터가 넘는 바위 위에서 세상을 향해 무언가 외치며 온몸으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과 보수층, 검찰까지 아우르는 다면적 성격의 승부수였습니다. 이번 승부수의 결과로 대한민국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인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그는 확실히 무언가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최후의 승부수에 담겨진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가 던진 승부수마다 그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늘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고 승부를 초월해 승부 자체를 즐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정도를 걸으면 마침내 승리한다는 자신감과 고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는 것을 개인의 고집 정도로 해석하기에는 그의 위상이 너무 큽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한 시대를 이끌어던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으니까요.  

 <키위피알 쟈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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